[장현미의 브랜드 스토리] 오드리 햅번도 반한 ‘니트의 여왕’

  • 입력 2012-01-14  |  수정 2012-01-14 07:41  |  발행일 2012-01-14 제14면
[장현미의 브랜드 스토리] 오드리 햅번도 반한 ‘니트의 여왕’

“패션이란 어느 전체로 볼 수 없고 한사람 한사람 개인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소니아 리키엘은 레지옹 도뇌르 훈장으로 빛나는 프랑스의 살아있는 전설이며 ‘니트의 여왕’으로 불리는 디자이너다.

1930년 프랑스 파리 태생인 유대인으로 20세에 결혼한 그녀는 평범한 가정주부 생활을 하며 남편이 운영하는 ‘로라’라는 작은 부티크를 이따금 도와줬다. 어느 날 자신이 임신 중에 입을 옷을 찾던 그녀는 마땅한 옷을 구입할 수 없자 직접 스웨터를 짜입었다. 그리고 이 한 장의 스웨터를 만들기 위해 일곱번이나 파리와 베니스를 오가는 우여곡절까지 겪었다. 이것은 소니아 리키엘 최초의 작품인 동시에 상징이 됐다. 이후 남편 의상실에서 자신이 짠 니트를 판매하며 본격적인 디자이너로서의 활동을 했다. 전문 패션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옷가게 현장에서 패션을 배운 셈이다.

1968년 나이 마흔에 두 아이를 데리고 이혼녀가 된 그녀는 첫 부티크를 오픈한다. 순조로운 출발을 보일 줄 알았던 매장은 3일만에 문을 닫게 됐고, 이를 계기로 그녀는 더 큰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게 된다.

당시만해도 니트는 투박하고 거친 이미지를 지닌 소재였다. 그러나 소니아 리키엘이 6천여점의 디자인을 선보이며 ‘니트의 여왕’으로 군림하는 동안 니트에 대한 선입견은 달라졌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무지개 컬러의 줄무늬나 사랑스러운 물방울무늬, 여성스러움을 살려주는 리본 같은 디테일이 더해진 니트웨어는 오드리 햅번, 카트린느 드뇌브 등 당대 최고의 여배우가 찾는 브랜드가 됐다. 그렇게 소니아 리키엘의 니트는 현대 여성이면 누구나 입고 싶어하는 옷이 됐고, 입는 순간 부드럽게 몸에 감기는 착용감과 가벼운 실용성은 ‘니트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결과물’이라는 평까지 받았다.

[장현미의 브랜드 스토리] 오드리 햅번도 반한 ‘니트의 여왕’

그녀는 아동복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데,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모든 부모는 생활 수준 차이에 구애받지 않고 자식만은 예쁜 옷을 입히고 싶어 한다는 심리를 꿰뚫고 대성공을 거둔다. 그 뒤 20∼30대 도시 청년층을 겨냥한 캐주얼 남성복시장까지 진출하며 미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일본, 한국 등 36개국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소니아 리키엘이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대표적인 요소 중 한 가지는 블랙을 아름답게 제안했다는 점이다. 1960년대에 블랙은 칙칙하기 그지없는 색이었다. 이것을 젊고 유혹적이며 풍부한 감성을 느낄 수 있게 그녀만의 차별화된 방법으로 표현하며 스타일리시한 블랙으로 새롭게 제안했다. 이러한 감성은 특히 일본 디자이너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으며 패션에 있어 중요한 심벌로 굳어지는 계기가 됐다.

과감한 색상과 패턴을 사용하는 패션 스타일과 다르게 내성적인 성격인 소니아 리키엘은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사양하는 대신 글을 통해 대중과 교감했으며 ‘카사노바는 여자였다’라는 자신의 수필집을 베스트셀러에 올려놓기도 했다.

80세를 넘긴 소니아 리키엘는 지금도 어김없이 오전 5시에 눈을 떠 생각나는 대로 스케치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세상의 호평이나 비판에 흔들림 없이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디자인 한다는 일념을 가지고 꿋꿋하게 장인정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녀는 디자이너의 전설인 코코샤넬이나 잔 랑뱅을 잇는 프랑스 현대 패션계의 대모다. <프리앤 메지스 수석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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