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박근혜가 진정 해야 할 일

  • 입력 2011-12-14   |  발행일 2011-12-14 제30면   |  수정 2011-12-14
기성정치에 대한 실망, 기존권위에 대한 조롱
새로운 정치·경제시스템 구축으로 성숙한 시민사회 만들려는 의지·실천보여야
[논단] 박근혜가 진정 해야 할 일

19대 총선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됐다. 이제 내년 4·11총선까지 119일 남았다. 익히 알고 있는 바이지만 정치인은 오로지 자신의 당락에 목숨을 걸 뿐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거치며 ‘안철수 바람’은 태풍으로 바뀌어 정치권 전체를 초토화시켰다. 지금 여·야 할 것 없이 서로 저만 살겠다고 아귀다툼이다. 국민의 정치 불신과 허무주의가 더욱 깊어만 가고 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을 등에 업고 대거 당선된 수도권 ‘MB돌이’들이 MB에게 당을 떠나달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이제는 귀찮은 MB를 내팽개치고 박근혜 전 대표에게 자신의 구명조끼가 되어달라고 아우성친다. MB 정권의 창업공신을 자처하던 인사, 얼마 전까지 당 사무총장을 지내며 당권에 도전했던 인물이 갑자기 ‘쇄신파’의 완장을 두르고 더 난리다. 정치무상을 떠나 역겨움마저 느낀다.

사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가 아니라 그 누가 나와도 한나라당은 유권자에게 혹독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 만약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이른바 ‘쇄신파’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박 전 대표를 ‘제단의 희생’으로 올려놓으려 들 것이다.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최소한의 예의와 염치 그리고 의리가 있어야 한다.

국민은 한나라당이 리모델링을 하든, 재창당을 하든 관심이 없다. 공천권을 누가 쥐느냐, 비대위가 총선까지 치르느냐, 그런 이야기는 ‘너희들만의 목숨 걸 문제’일 뿐이다. 4년 전 ‘좀 잘 살게 해 달라’고 대선과 총선에서 밀어주었는데 성적표가 엉망진창이니 한번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것이 국민의 속마음이다. 그런데도 마치 달팽이 뿔 위에서 10만 대군이 죽기 살기로 싸우는 와각지쟁(蝸角之爭)의 초라함만 연출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안철수 신드롬’이 시작된 지 100일이 지났다. 그 100일은 거의 100년에 버금가는 혁명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기성 정치에 대한 허무주의와 실망이 기존의 권위에 대한 조롱과 비아냥거림으로 표출되고 있다. 국가적 에너지의 낭비다. 안철수 신드롬의 본질은 바로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민초가 메시아를 기다리는 그런 마음이다. 거짓 선지자든 진정한 메시아든 현실로부터 탈출만 한다면 기대고 싶은 절박함의 표현이다.

한나라당은 집권당이다. 집권당답게 행동해야 한다. 당리당략을 떠나 대한민국 2.0을 준비하고 그랜드 디자인을 제시하며, 국민의 지친 마음을 보듬어 안으려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총선에서의 당선과 대선을 통한 재집권,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수명을 다해가는 대한민국 1.0의 문제점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새로운 국가의 모습을 두고 처절하게 고뇌하는 진정성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외부적 요인으로 광복을 맞으며 거의 무비판적으로 미국식 정치제도를 차용했고, 선택과 집중의 일본식 재벌경제시스템을 원용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 결과 자유와 책임의 균형이 애매해지고 경제적으로는 사회 양극화의 모순이 필연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국가 시스템도 유기체다. 성장과 노쇠 그리고 소멸의 단계를 밟기 마련이다. 지금 국민의 불만은 한나라당에 국한된 게 아니라 정치권 전체, 나아가 우리나라의 모순된 피라미드 구조 특히 그 상층부를 겨냥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제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의 개혁과 쇄신 논의에만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분명한 한계를 보이고 있는 국가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새로운 정치·경제시스템을 구축해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실천에 옮겨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국가의 기본 틀을 규정하는 헌법의 개정까지도 심각하게 고려하면서 시대정신을 구현하려는 국가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야 할 것이다.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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