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3] 臼(절구 구): 방아를 찧는 절구의 모양

  • 입력 2011-09-19   |  발행일 2011-09-19 제30면   |  수정 2011-09-19
[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3] 臼(절구 구): 방아를 찧는 절구의 모양

농사를 지어 곡식을 거두다 보면 알곡을 벗기지 않고 그냥 먹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나무나 돌로 알곡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을 만들고 절구 공이로 이를 빻아 일단 껍질을 벗기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이 때 만든 그릇은 다른 그릇과는 달리 속이 매끈하면 용도에 맞지 않다. 오히려 공이로 빻을 때에 그릇의 속이 까칠해야 껍질이 잘 벗겨 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속이 까칠한 모양을 한 큰 그릇으로서의 절구를 그대로 본뜬 것이 곧 ‘臼’(절구 구)다. 절구에 거둬들인 곡식을 적당히 담고 공이를 들어대어 곡식을 빻아 껍질이 벗겨지는 현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곡식의 껍질과 껍질끼리 생기는 마찰로 말미암아 탈피가 되는 것이지, 반드시 절구 공이에 맞아 탈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다. 누구나 사람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성장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단독으로 그저 사람이라 이르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뜻에서 인간사회라 이른다. 사람들은 일방적인 배움을 통해서만 학습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본받아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대로 벗들이 만난다(以文會友)’라 하여 비슷한 것들을 구하고자 하는 자들은 비슷한 것들 끼리 모여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성장하는 것이 정상적인 일이기 때문에 ‘벗’이라는 말 역시도 서로가 벗겨주는 사이라는 말일 따름이다.

크게 보면 인간사회는 하나의 절구 속과도 같고 그 속에 담긴 개개인은 벗겨지지 않은 알곡들과도 같다. 그리고 누군가가 이 절구에 담겨진 벗겨지지 않은 곡식들에 대하여 공이질을 한다면 여러모로 자극을 주어 깨달음을 얻게 하는 각종 지도자들과도 같다. 학교가 절구 그 자체의 배움터라면 학생 개개인들은 아직 껍질이 벗겨지지 않은 순수한 곡식들이며, 이들에게 깨우침을 주는 스승은 절구에 걸맞은 공이와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단순히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성장하는 것도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벗겨 주는 ‘벗’ 사이로 성장하게 된다.

따라서 공자께서도 이르시기를 “배움을 싫어하지도 말아야 하고, 가르침에 게을러서도 안 된다(學不厭 敎不倦)”고 하셨으니 까칠한 절구 속에 담긴 학생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가 서로를 벗겨가며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야 할 것이요, 스승은 열과 성을 다해 공이질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절구와 공이가 서로 어울려 방아가 찧어지는 것처럼 절구가 곡식을 담고 공이가 끊임없이 짓찧어져야 하는 방아의 원리를, ‘臼’ 위에 ‘大’(열성을 다하여)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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