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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교육] 자랑스러운 6월항쟁의 아침 나는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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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미디어부기자
  • 20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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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을 실감하던 시절이어서 우리는 우리가 한 일을 자세히 기록해 두지 않았으니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몸이 기억하는 것은 저절로 떠오른다.

1987년 여름은 뜨거웠다. 6월 항쟁 기간 내내 나는 수업을 마치면 거리로 나갔다. 최루탄과 백골단의 기억은 무섭지만, 대구 반월당에서 시작하여 서문시장~명덕네거리로 이어지는 ‘호헌철폐 독재타도’의 외침은 지금도 뜨겁다. 항쟁은 대통령 직선제 쟁취를 이루어내고, 7월9일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6월 항쟁의 정신은 7·8·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들불처럼 공장으로 확장되었다. 이 열기는 전국 학교의 교무실로 옮겨왔다. 나는 안동에서 열린 한국글쓰기연구회 여름 연수에 이오덕 선생과 권정생 선생을 만나고 싶어 갔다. 이날(8월22일) 흥사단에서 전국 초등교육자협의회 결성으로 이어졌다. 이후 교사인 나의 운명도 바뀌었다. 선배들을 따라 9월26일 수업을 마치고 밤차를 타고 서울에 내려 밤을 새우고 27일 첫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 수유리 한신대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내 경찰이 둘러싸지만 전국교사협의회는 작지만 감격적으로 결성되었다. ‘맹목적인 복종을 단호히 거부하고 교사의 단결을 기초로 학생교육을 정상화하고 이 땅의 참된 교육을 실천해 나갈 것’을 결의했다. 종일 굶고 경찰이 물러난 뒤에야 북한산을 넘어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지만 87년 주장 가운데 하나가 교육악법 철폐였는데 그 중에 ‘초중등 차별철폐’가 있었다. 학교로 돌아왔더니 어느 날 초등국장이 교실에 찾아와서 회유를 했다. 그때 돌아섰으면 나는 지금쯤 어느 학교 교장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구멍 뚫린 교실 마루를 고쳐줄 것과 비교학력고사 폐지를 요구했다.

89년 3월9일, 여소야대 국회에서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교사와 공무원들도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게 되었지만 노태우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해버렸다. 이미 국민적 지지를 얻은 전교조는 5월28일 결성을 강행했다. 6월11일 경북대 야외공연장에서 구속협박과 경찰의 원천봉쇄를 뚫고 대구지부와 경북지부를 결성했다. 전교조 지도부는 이미 구속되었고 대구와 경북의 지도부 교사들은 25일 전남대에서 열린 대의원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고속도로 입구에서 연행되어 곧바로 구속되었다. 나는 국도로 돌아온 덕에 연행되지 않았다.

여름 방학식을 마치고 3학년 아이들을 보내고 교장실로 갔더니 이젠 친해진 서부경찰서 경찰관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국밥을 한 그릇 먹자고 해서 경찰서 앞 식당으로 당당하게 갔지만 나는 절반도 먹지 못하고 경찰서에 연행되었다. 죄목은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다. 88년에 펴낸 학급 문집에는 이미 붉은 줄이 여기저기 그어져 있었다. 나는 사흘간 유치장에 갇혀있었다. 이미 화원교도소에 갇혀있던 자형이 한 집안에 두 명이 구속될 수는 없다며 노모의 건강을 걱정한 권유를 전해 와서 나는 전교조를 탈퇴하겠다고 말하자 풀려났다. 하지만 해직을 각오한 교사들은 7월26일부터 열하루 동안의 명동성당 단식농성을 했다. 나는 비겁하지만 그해 여름 교육청 징계위원회에 출석하여 탈퇴각서를 쓰고 밥줄을 지켰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91년 전교조 활동을 계속 한다는 이유로 해직교사가 되었다. 대구경북은 160여명의 교사가 해직되었다.

전교조 결성 30주년, 6월 항쟁 32주년이 되었다. 32년간 잊지 않은 기억은 더듬지 않아도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전교조 대구지부 결성 30주년을 맞는 오늘, 전교조 전 대구지부장은 정년을 앞둔 채 해고되어 있고, 현 지부장은 직위해제 되었다. 세월이 지나고 촛불정부가 들어섰지만 교사들은 전교조를 법으로 보장하라는 요구를 하며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오늘부터 ILO는 100주년을 맞아 총회를 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일’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1991년 152번째 회원국이 되었지만 노동조합 결성조차도 이 모양이다. 30년을 기다렸는데 몇 년을 더 기다리지 못하기야 하겠냐만 교사들이 에너지를 참교육에 쏟도록 이제 그만 끝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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