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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김수영의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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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뉴스팀기자
  • 2018-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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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기에 지치면 다시 김수영의 수필이다 일주일에 두 편 어느 주일엔 세 편 어느 주일엔 한 번도 안 읽지만 그의 수필을 시라고 생각하면서 읽게 된 내가 하도 기가 막혀 아아 이젠 내가 완전히 미치나 보다 생각이 들면 그의 수필을 읽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도 잡지에 실린 시들을 읽다가 집어던진 나는 … 이 방엔 내가 쓴 이상한 시들도 많지만 이젠 모두 낡은 시다 이 방에 있는 낡은 시보다 더 낡은 시를 쓰는 나를 보고 놀랄 사람들은 없을 거다 물론// 김수영의 시보다 김수영의 수필이 더 젊다고 당신에게 말하면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놀랄 거야 당신은 내가 언어에 지쳤다고 하겠지만 언어가 나한테 지쳤을 거야 아무튼 우린 지친 다음 지친 다음 시를 써야 하는 거야 나는 이 시를! 내가 이 시를! 글쎄 이 잡문을! 이 잡문을! 내가 내 시에 책임이 없듯이 언어도 내 시에 책임을 못 진다 당신도 책임을 못 진다 하물며 강의에도 책임을 못 지는 내가 사랑에도 책임을 못 지는 내가 아이들 문제에도 책임을 못 지는 내가 오늘 저녁에도 책임을 못 지고 이 글에도 책임을 못 진다 그건// 내가 내 시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낡은 것 낡은 것 더 낡은 것 오늘보다 더 낡고 수필이 되고 잡문이 되고 잡문보다 더 낡을 때 더 낡을 때 구멍이 뚫릴 때 구멍이 이 시를 삼키리라 …’ (-이승훈, ‘김수영의 수필’)

‘겨울 저녁이면 난 버스를 타고 당신의 방에 간다고 시를 쓴다 언제던가 그해 겨울 저녁에도 난 버스를 타고 당신의 방에 갔다고 시를 썼다 당신은 없고 빈 방에 모자를 걸어두고 왔다는 내용이다 그때만 해도 시적이었군! 당신 없는 방에 혼자 앉아 담배를 피우고 밖에는 눈이 내리고 당신 혼자 사는 작은 방 벽에 모자를 걸어놓고 돌아왔다고// 그해 겨울 어머니는 개포동 독신자 아파트(13평)에 혼자 사셨다 난 일요일이면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는 작은 방에 앉아 계셨다 어머니는 뒷산에 산책을 나가신 날도 있었다 난 어머니가 없는 빈 방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어머니가 읽다 둔 원불교 경전도 보고 혼자 돌아온 날도 많다 어머니는 지난해 겨울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밤에 난 거리를 떠돌고 있었다// 겨울 저녁이면 당신의 방에 간다고 시를 쓴다 당신은 겨울 오후 작은 방에 누워 있었지 밖엔 바람이 불고 난 목에 마후라를 하고 눈 내린 골목을 돌아갔다 아아 옛날 춘천에서다 난 당신을 찾아갔다 어머니도 겨울 오후 작은 방에 누워 계셨지 일요일이면 차를 몰고 갔다 그러나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오늘도// 난 당신의 방에 간다고 시를 쓴다 … 난 누군가를 따라 이 세상에 왔다 내가 노래한 작은 방은 모두가 어머니를 상징한다 ….’ (-이승훈, ‘작은 방에 대한 회상’)

대구 도심 어느 밥집에서 멸치와 마른 김을 안주로 맥주를 마시며 비의(秘意) 가득한 이상의 시를 피력하던 그가 생각납니다. 이승훈 시인이 며칠 전 병원에서 영면하셨습니다. 장례식 날 신촌 어느 곳에서 맥주를 마시고 거리를 떠돌았다는 제자 시인이 울먹이며 전화를 했더군요…. <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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