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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시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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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뉴스팀기자
  • 201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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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아침이었다. 밀렸던 원고를 정리하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이게 웬일일까? 약 먹은 쥐를 먹은 모양이지? 저걸 어쩌나?" 걱정하시는 소리가 문 밖에서 들려왔다. 아마 나에게도 들려주어야겠다는 심산인 것 같았다. 방문을 열고 뜰로 나섰다. 제법 토실토실 자랐고 며칠 전부터는 낯선 사람을 보면 짖어대기까지 하던 강아지가 거품을 흘리며 비틀거리기 시작한다.…후들거리는 다리를 뜻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속히 비눗물을 만들어 입에 퍼 넣어 주기 시작했고 어린 것을 불러 약방으로 달음질치도록 부탁을 했다. 강아지는 약간 긴장이 풀리는 듯이 햇볕이 쪼이는 담장 밑에 누워 버렸다. 아무래도 고통스러움을 견뎌내지 못하겠던 모양이다.

강아지 때문에 휴강을 할 수는 없었다. 산란해지는 마음을 가라앉히지도 못한 채 학교로 달려가 한 시간 강의를 끝냈다. 강의를 하는 도중에는 잊고 있었으나 강의가 끝나니 강아지 생각이 물밀 듯 솟아오른다. 다행히 가까운 거리였기에 달음질치다시피 집으로 돌아왔다. “강아지가 어떻게 되었지요?" “글쎄, 아무래도 죽으려는 모양이다." 그때까지 지키고 계시던 어머니의 말이었다. 행여나 행여나 기대했던 마음에 적지 않은 충격이 찾아드는 것 같았다. 누워 있는 강아지 옆으로 가 앉았다. 거품을 물고 허리가 끊어지는 듯이 괴로워하던 강아지가 그래도 주인이 옆에 왔다는 것을 의식했던 모양이다. 겨우 일어서서 두세 번 꼬리를 흔들어 보이더니 그만 제자리에 누워 버렸다.…나는 애처로워 그대로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버리고 도망갈 수도 없는 일이다. 품에 안아 보았으나 고통은 여전한 모양이다. 다시 땅에 내려놓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무척 괴롭고 답답한 모양이었다. 그 두 눈은, ‘나를 좀 어떻게 해 주세요! 이 죽어 오는 고통을 덜어 주거나 어떻게 좀 더 살게 해 주세요. 왜 가만 보고만 계시는 것입니까?’ 묻는 것 같기도 했고 애원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한참 뒤 누운 채로 꼬리를 약간 흔들어 보이더니 더 견딜 수 없는 모양이었다. 눈의 빛깔이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하고 전신이 가벼운 경련을 일으키더니 그만 몸의 긴장을 푸는 것 같았다. 나는 두 눈을 살그머니 감겨 주었다. 몇 분이 지났다. 강아지는 곱게 완전히 누워 버렸다. 꼭 잠든 것 같았다. 가볍게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흡사 ‘세상은 너무 괴로웠다’고 호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오후에는 또 강의가 있었다. 그러나 강아지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를 않는다. 온 가족들의 생각이 꼭같은 모양이었다. 새삼스럽게 인간이 얼마나 무능한 것인가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작은 강아지 한 마리의 생명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인간이 철학을 논하고 예술을 말하며 과학의 위대성을 떠들고 있다. (김형석, ‘죽음’ 중에서)

서울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며 커피를 든 97세의 노교수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의를 듣던 것, 평양 숭실중학교에서 세 살 많은 윤동주 시인과 한 교실에서 수학했던 이야기를 들려 주셨어요. 타임 워프, 천 년의 곡조를 품은 오동나무, 천 번을 이그러져도 본질이 남는 달, 한 나라의 어른. 이런 생각들로 가득한 순간이었습니다. 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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