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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비슷한 것은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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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뉴스팀기자
  •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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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고을살이하다 한가한 틈이 나면 짬짬이 글을 짓거나 혹은 휘장을 내놓고 글씨를 쓰기도 하는데 너희는 해가 다 가도록 무슨 일을 하였느냐? 나는 4년 동안 ‘자치통감 강목’을 숙독하였단다. 두루 재삼 읽었지만 나이를 먹어서인지 책만 덮으면 금방 잊어버리니 부득이 작은 책자를 만들어서 요긴한 대목만 가려 뽑아 적어 두었지만 그리 긴한 것은 아니란다. 비록 그러하나 기양(伎 지니고 있는 재주를 쓰고 싶어서 마음이 간질간질한 생각)이 시켜서 어찌할 수 없었단다. 너희가 하는 일 없이 날을 보내고 허송세월로 해를 보낼 것을 생각하니 어찌 안타까운 마음이 심하지 않겠느냐. 한창 나이에 이러면 나이 들어서는 장차 어쩌려고 이러는 게냐? 웃음가마리(웃음거리)지, 웃음가마리야.’ (-박지원, ‘종의와 종채,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초사흗날 관아의 하인이 돌아올 때 기쁜 소식을 가지고 왔더구나. ‘응애 응애’ 하는 갓난쟁이의 그 울음소리가 편지 종이에 가득한 듯하구나. 인간 세상의 즐거운 일이 이보다 더한 게 어디 있겠느냐? 육순의 늙은이가 이제부터 손자를 데리고 즐거워하면 됐지 달리 무엇을 구하겠니? 또한 다시 초이튿날 보낸 편지를 보니 해산한 부인네의 여러 증세가 아직도 몹시 심하다고 하니 아주 걱정이 되는구나. 산후 복통에는 모름지기 생강나무를 달여 먹여야 한다. 두 번만 먹으면 즉시 낫는다. 이것은 네가 태어날 때 쓴 방법으로 노의(老醫) 채응우(蔡應祐)의 처방인데 신이한 효험이 있으므로 말해 준다…’ (-박지원, 1796년 3월 10일, ‘큰아들 종의에게 보낸 편지’)

‘아아! 누이가 처음 시집가는 날 새벽에 화장하던 일이 어제와 같다. 그때 내 나이 막 여덟 살이었지. 어리광을 피우면서 떠나는 말 앞에 누워 뒹굴며 신랑의 말을 흉내 내어 점잖이 떠듬적거리니, 큰누이는 부끄러워 얼레빗을 내 이마에 던져 맞추었다. 나는 골이 나 울면서 먹을 분가루에 개어 놓고 거울 가득히 침을 뱉어 놓으니, 누이는 옥으로 만든 오리와 금으로 만든 벌을 꺼내서는 나에게 넌지시 건네어 울음을 그치게 하였다. 지금 벌써 스무여덟 해가 되었다. 말을 강가에 세우고 멀리 바라보니, 명정(銘旌)이 펄럭펄럭 날리고 돛대 그림자는 강물에 구불구불하더니 언덕에 이르러 나무를 돌아서자 가려서 다시 볼 수가 없게 되었다. 강 위의 먼 산이 검푸른 게 마치 누이의 큰머리채와 같고 강물 빛은 누이의 거울과 같았으며 새벽달은 누이의 눈썹과 같았다…….’(-박지원, ‘큰누이의 운구를 실은 배가 떠나가는 것을 보고 지은 글’ 중에서)

연암 박지원은 과거시험 투의 정형화된 문장과 겉을 화려하게 꾸미는 변려체의 글을 참으로 경멸했습니다. 이런 폐단이 이 땅의 문학을 사라지게 하고 비슷한 문장만 남겨 ‘비슷한 것은 가짜다’라는 말도 남겼지요. 이 말을 곰곰이 되씹어보면 꾸준한 독서와 글쓰기로 자신만의 문체를 찾는 것밖엔 도리가 없을 듯합니다. 남을 따라가다가 자신을 잃지 않는 글쓰기 또한 끝없이 반복되는 나의 일상에 초배율 현미경을 들이대어 새로움을 발견하는 한 방법일 듯합니다.

<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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